바다 내음을 가득 머금었다. 달콤하고 쌉싸래한 ‘성게알’은 그야말로 진미로 꼽힌다.
입안에 들어가면 살살 녹아버린다. 순간 싱그러운 향기도 퍼진다.

김이나 감태 한 장이면 맛은 배가 된다. 비빔밥, 미역국, 계란찜으로 요리해도 각기 다른 매력을 뿜는다.
초밥 같은 일식에도 자주 쓰인다. 일본어로 ‘우니(ウニ)’가 곧 성게(알)이다.

귀한 대접을 받는 만큼 채취하기는 쉽지 않다. 성게알로 불리는 부위는 엄밀히 따지면 ‘생식소’.
수컷 정소와 암컷 난소 모두 해당된다.

바닷속에서 가시로 덮인 성게를 꺼낸 뒤 몸통 속 성게소를 빼내는 작업이 필수적인 셈이다.
성게알은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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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가 잡아 온 ‘물건’

부산 앞바다 성게는 보통 해녀들 손에 뭍으로 나온다. 지난달 25일 오후 2시께 부산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 해녀촌. 포장마차 거리에 놓인 고무 대야는 말똥을 닮은 둥근 해산물로 채워져 있었다.

가시로 덮여 밤송이 같기도 한 이 물건은 ‘말똥성게’. 해녀 김문연(71) 씨가 이날 군소(일명 바다달팽이), 해삼, 미역 등과 함께 바다에서 건져온 ‘보물’이다. 얼핏 봐도 성게 몸통만 수백 개로 추정됐다. 그가 이날 오전 7시 반에서 오후 1시 이후까지 물질을 한 결과다.


말똥성게는 늦가을부터 찬 바람 부는 겨울까지 제철이다. 몸통 지름이 보통 2~5.5cm 정도인데 다른 종류 성게알보다 맛이 좋은 편이다. 부산을 포함한 경상도에서는 ‘앙장구’라 불리기도 한다. 참기름, 김, 깨소금 등과 비벼 먹는 ‘앙장구밥’의 핵심 재료가 말똥성게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5~8월에 많이 잡히는 보라성게보다 가격대가 비싼 편이다. 연화리 일대에서는 올 3월까지 해녀들이 말똥성게 수확을 이어갈 전망이다. 김 씨는 이날 손가락 끝을 보여주며 “(성게 잡아 오다가) 가시가 박혀서 아파죽겠다”며 “이렇게 해서 자식들 다 키웠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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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칼로 반 토막



성게알을 골라내는 작업은 김 씨의 딸인 이 모(48) 씨가 맡았다. 그는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해 일이 굉장히 많은 편”이라며 “이른바 ‘깨고, 까고, 거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씨가 곧 ‘삼각형 모양 칼’을 들자 서걱서걱 소리가 이어졌다. 말똥성게 중간 부분에 칼끝을 들이민 뒤 반으로 토막 낼 때 들리는 음성. 쪼개진 성게 몸통은 바닥에 깐 회색빛 천 위에 하나둘 쌓여가기 시작했다.

말똥성게가 쪼개진 틈으로 노랑 혹은 주황색 물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몸통 안에 숨었던 성게알이 드디어 세상 빛을 본 셈이다. 성게알은 몸통 속에 꼭꼭 숨어있거나 조금씩 삐져나온 경우도 있었다.

이 씨는 “칼로 몸통을 잘 자르는 것도 꽤 중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틈으로 찌꺼기가 많이 들어가고 나중에 성게알을 빼내기도 번거롭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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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모아 태산

토막 난 성게 몸통이 지천으로 널렸다면 이제 ‘티스푼’의 시간이다. 성게알을 파내기 위해 이것만큼 적합한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티스푼보다 조금 더 큰 숟가락은 정교한 작업을 어렵게 만든다.

이 씨는 밤송이 같은 몸통에 찬 성게알을 꺼내기 시작했다. 작은 숟가락으로 군밤을 파내듯 긁어냈다. 주황색 혹은 노란 물체가 손가락 1~2마디 크기 정도로 티스푼에 담겨 나왔다.



성게알은 하늘색 작은 대야로 옮겨졌다. 맑은 물에 풍덩 빠진 성게알이 바닥에 가라앉았다. 이 씨의 숙련된 손질이 계속되자 성게알은 조금씩 쌓여갔다. 대야 속 맑은 물이 뿌옇게 변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수면 위까지 성게알이 넘치기 시작했다.

성게알을 쉬지 않고 파내던 이 씨는 “성게 몸통에 비해 성게알 양은 얼마 안 된다”며 “성게 수십 개를 손질해야 조그만 접시를 채울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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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초 골라내기



티스푼이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도구는 ‘핀셋’. 성게알을 식탁에 올리려면 마지막 작업 과정이 남았다.

작은 대야에 쌓인 성게알은 깨끗한 물이 담긴 큰 고무 대야로 옮겨졌다. 성게를 잡아 온 해녀 김 씨는 성게알과 함께 몸통에서 나온 내장과 해초 등을 체로 거르기 시작했다.

핀셋은 그 이후에 투입됐다. 크기가 작은 내장이나 해초는 체로 한 번 걸러내도 성게알 옆에 그대로 붙어있기 때문이다. 이날 김 씨는 체에 담긴 성게알을 넓적한 쟁반 위에 털어냈고, 딸 이 씨는 물을 살짝 부은 뒤 핀셋으로 내장과 해초를 골라냈다.

이 씨는 “성게가 해초를 먹고 사는데 손질을 할 때 성게알과 함께 나온다”며 “해초는 먹어도 크게 상관없는데 외관상 판매를 하려면 골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접시에 담겨 식탁으로 

연화리 해녀촌에서는 성게알을 작은 접시에 담아 판매한다. 성게알이 필요한 한식당이나 일식집 등과 직거래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성게알을 많이 소비하는 일본에 수출하는 경우도 많았다.

손질을 마친 성게알은 영롱했다. 특히 말똥성게는 수컷 정소가 색이 좀 더 연하면서 밝았고, 암컷 난소가 상대적으로 진한 데다 주황색을 띠었다. 해녀 김 씨는 “진한 색 성게알이 좀 더 쌉싸름한 맛이 난다”고 말했다.

성게알이 식탁에 오르기 전까지의 복잡한 과정은 어촌계에서 반복되는 일상이다. 지금보다 성게 수확이 많았던 시절에는 일이 더 많았다고 한다. 김 씨의 딸 이 씨는 “보통 해가 지기 전까지 손질을 마쳐야 해서 일을 빨리빨리 해야 한다”며 “성게가 엄청 많이 잡히던 시절에는 새벽까지 작업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성게알이 풀려버리면 안 되니까 아기 다루듯 손질한다”며 “식탁에 오르는 성게알은 비싼 주사를 맞는 것만큼 영양가도 풍부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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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이우영 기자 |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