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 수정동의 한 골목. 건물 사이로 차가운 골바람이 분다. 오후 12시 40분. 점심 식사를 끝낸 직장인들이 쏟아진다. 턱 끝까지 내려온 다크 써클. 흐리멍덩하고 충혈된 눈. 부른 배를 내밀고 뒤뚱거리며 어디론가 걸음을 옮긴다. 뭔가 중얼거린다. "배부르다, 졸리다" 따위의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서너 명씩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 '꼬순내'를 따라 습관처럼, 중독처럼 어디론가 향한다. 작은 창문이 뚫린 작은 가게다.
무표정한 얼굴로 '1500원'을 내고 '검은 물'을 산다. 맞다. 바로 커피다.
그들이 서 있는 거리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곳은 프랜차이즈 카페들의 소리 없는 전쟁터다. 선공은 상위 10% 원두를 사용하는 곳. 매달 특정 일에 아메리카노를 1500원이라는 가격에 공급한다. 부산 지역번호에서 상호를 딴 가게도 질 수 없다. 캔 포장을 내세우며 맞대응한다. 두 가게는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월요일이면 생각나는 가게. 그리고 작은 사이즈를 주문하면 큰일 날 이름을 가진 가게도 저마다의 강점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130년 전부터 시작된 '가배' 사랑
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사랑은 유별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커피 소비량은 세계 6위, 2018년 기준 20세 이상 인구의 국내 1인당 커피 소비량은 353잔으로 전 세계 평균 132잔의 약 3배에 달한다.
부산은 커피 도시다,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다.
기원을 따지면 1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0년대 전후 부산에서 커피를 마신 기록들이 속속 나온다.
국사편찬위원회 통리기무아문 보고서에는 1898년 8월 19일 동래부사 연회비 내용에 '가배(커피)차 1통, 한 냥 오 전' 기록이 있다. 로컬문화 연구자 김만석 작가는 "동래부사가 '외국인 손님이 오니' 커피를 대접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가배를 요청하는 내용이 나온다"고 말했다.
←1892년 12월 16일, 부산해관 감리서 서기관 민건호의 일기 <해은일록>
부산해관(부산세관) 민건호가 기록한 <해은일록> 1892년 12월 16일 자에는 "양주 3병, 갑배차(甲琲茶·커피) 1갑, 영국 담배 1갑을 부쳤다"는 기록이 있다. 부산세관박물관 이용득 관장은 "민건호는 커피를 아는 이들에게 선물로 부치게 되는데, 아마 영국인 해관장에게 받은 선물을 다시 지인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그보다 일찍 초량왜관을 통해 나가사키, 대마도를 거쳐 서구의 설탕이 들어오면서 부산으로 커피가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커피는 원두가 맛을 결정한다.
그래서 원두를 얼마나 빨리 신선한 상태에서 커피로 가공하는지가 중요하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에서 수입하는 커피류(원두·커피 대용물 포함)의 90% 이상이 부산항으로 들어온다. 부산이 커피 도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부산 커피, 무한 경쟁 시대
2014년 부산대 앞 '더벤티'. 경쟁 프랜차이즈 커피를 크기로 압살하는 벤티(590ml) 사이즈 커피를 내놓았다.
가격은 1500원. 큰 성공을 거뒀고 이어 '컴포즈' '더리터' 등 맛과 가격에서 경쟁력을 갖춘 향토 프랜차이즈가
속속 탄생했다. 현재는 '베러먼데이' '텐퍼센트' 등 후발 주자들도 등장했다.
2019년 기준 부산 시내의 커피전문점은 4807개다. 2년 만에 1211곳 증가했다. 2019년 종사자 수는 무려 1만 5177명, 2017년 종사자 수는 1만 1285명이었다.
부산 커피 프랜차이즈도 폭발적으로 탄생했다.
2018년 27개였던 부산의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3년 만에 3배 넘게 늘었다. 2021년 12월 부산시에 등록된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무려 94개다. 가맹점 수도 크게 늘고 있다. 2018년 부산 시내에 카페 351곳을 가맹점으로 뒀던 부산의 한 커피 프랜차이즈. 2021년 해를 넘기 전에 가맹점 수 787곳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부산 커피 프랜차이즈의 전국 가맹점 수는
2018년 981개에서 2020년 1545개, 2021년 2529개로 늘었다.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무서운 확장세다.
부산 커피 프랜차이즈의 특징과 강점은 뭘까?
"커피 맛, 기본은 한다! 그럼 딸기라테는?"
프랜차이즈 커피 맛은 구별하기 힘들다. 바리스타같은 미각과 후각도 없다. 하지만 쓰는 원두도 한정적이고, 원샷이냐 투샷이냐 정도의 차이일뿐 에스프레소 기계도 대동소이하다. 원두를 강하게 로스팅해 만든 탄 맛을 '깊은 맛'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산미가 있는 원두를 쓴다고 광고해도 직접 로스팅도 하지 않고, 핸드드립이 아닌 이상 가맹점에서 맛을 비교하기도 뭣하다. 맛이 없다는 게 아니라 구분하기가 힘들다. 저가 프랜차이즈의 아메리카노는 저렴한 가격에 '평타만 치면' 불만없이 마시게 된다.
그래서 텐퍼센트, 카페051, 하이오커피, 베러먼데이커피, 블루샥의 '딸기라테'를 비교해보기로 했다.
갑자기 왜 이 메뉴냐고 물으신다면, 첫 번째로 기자의 '최애' 메뉴고, 두 번째로 딸기가 제철이라서다. 도합 1만 9600원짜리 리뷰다. 너무 주관적으로 평가될 우려가 있어 평소 딸기 라테를 즐기는 J와 단맛을 싫어하는 S가 시음에 도움을 줬다. 표기법상 '라테'가 맞다. 그러나 메뉴 이름은 가게가 적는 방식 그대로 썼다.
한국의 '응커피'라고요?
먼저 '텐퍼센트커피'. 심플한 외관과 상호로 사람들의 눈을 잡아끄는 이곳은 2017년 부산 시청본점을 1호점으로, 21년 12월 기준 전국 337개 지점을 가지고 있다. 세계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의 기준으로 평가된 80점 이상의 상위 10% 생두를 사용한다고 하며 나뭇결을 베이스로 한 브라운색의 인테리어로 익숙한 곳이다.
개점 초기 아시아의 '블루보틀'이자, 일명 '응커피'라고 불리는 일본의 '퍼센트 아라비카'라는 카페와 심볼이 비슷해 이야기가 많았다. 왜냐하면 두 브랜드 모두 '%'를 심볼로 삼기 때문이다. 퍼센트 아라비카의 심볼이 더 각지고 검은색으로 심플한데 비해, 텐퍼센트는 '%'의 동그란 부분이 원두 모양이고 컬러도 카모플라주 패턴이다. 퍼센트 아라비카는 2014년 일본 교토에 처음 문을 열었다. 흐린눈으로 보자.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다크'와 '미디엄'으로 나눠 주문을 받는다. 아메리카노 가격은 2000원, 가끔 특정일에 1500원으로 할인한다. 시그니처 메뉴는 '텐라떼'. 8온스 양이 적다는 지적을 받아들였는지, 지난해 말 10온스(283ml)로 사이즈 업했다. 그래도 작은 편이다. 먼저 쫀쫀한 크림이 입술에 닿는다. 후루룩 마시면 우유와 에스프레소가 섞여 들어온다. 첫맛이 달고 끝맛은 부드럽다.
드디어 딸기라테를 평가할 차례다. 텐퍼센트에는 딸기라테라고 이름 붙은 메뉴는 없다. 대신 '스트로베리라떼'가 있다. 가격은 3500원. J는 "얼음이 커서 섞어 먹기가 힘들다"며 "우유 자체에 설탕이 들었는지 단맛이 꽤 강하다"고 평했다. 기자의 평가도 비슷했다. 너무 달다. 원인은 딸기청과 우유 위에 올려진 딸기 생크림이다. 다른 가게에서 볼 수 없는 구성이다. S는 "딸기잼 맛이 난다"며 "싸고 단 강렬한 맛이 혀끝에 남는다"고 말했다.